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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27
등록일 2022.12.24 조회수 726

이정목(里程木)이 없는 숲길은 언제 힘든 숨결로 된 비탈길을 넘어왔냐는 듯이 완만(緩慢)하다. 평온(平穩)한 숲길은 당재에 닿기까지의 험난(險難)한 이력(履歷)을 잠시(暫時) 지운다. 둘레길 마무리 구간(區間)으로 삼은 당재! 그 이정목(里程木) 앞에서 길손은 더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긴 날숨으로 섰다. 당재에서도 길은 변함없이 이어가겠지만 주관(主觀)이 소멸(消滅)된 길은 객관(客觀)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둘레길을 마치고 되돌아오는 길에 어느 날 인연(因緣)으로 다시 만나길 바랐다.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산마루 :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부분

산등성이 : 산의 등줄기

우듬지 : 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 나무초리 포함

나무초리 : 나무줄기의 뾰족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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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演劇人)들은 무대(舞臺)에서 공연(公演)하다 죽는 것을 꿈꾼다고 한다. 둘레길을 가면서 숲길을 걷다 죽는 일도 꽤나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길을 걷다가 죽으면 나무가 되거나 바위가 될 것 같다. 어쩌면 한 일 년쯤 더 걸으면 죽지 않고 살아서도 나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무가 될 바에야 사철 푸른 소나무보다는 계절(季節)에 순응(順應)하며 살아가는 그런 나무가 되고 싶었다. 숲길에서 보았던 키 큰 개오동나무가 되어 여름날엔 날짐승 불러 모아 놓고 그늘에서 노래하게 하고, 겨울날엔 밤새 내리는 눈발을 맞으며 허허로움에 몸부림쳐도 되리라 생각했다.

 

꽤나 : 보통보다 더한 정도로

허허로이 : 언행이나 모습이 허전하고 쓸쓸한 듯 한 모습, 어떤 곳이 텅 비어 있는 듯하게

 

숲길에서 길손의 영혼(靈魂)은 가벼웠다. 낯설지 않지만 붙잡을 수 없었던 또 다른 내가 그 숲길에 있었다. 숲길의 내가 상()하지 않고 세상(世上)에 가 닿기를 소망(所望)했다. 꿈이 나무로 싶어갈 때 쯤 예정(豫定)된 둘레길은 종점(終點)에서 종점(終點)을 의심(疑心)하며 끝났다. 의심(疑心)은 이번 토요일(土曜日) 아침은 배낭(背囊)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餘裕)를 느끼게 하면서도 상실(喪失)의 실체(實體)가 되었다.

 

길손 : 먼 길을 가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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