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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무엇이든 쓰게 된다. by 김중혁-16
등록일 2023.01.03 조회수 922

훗날 있을 안정(安定)을 위해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정신(精神) 차릴 수 없게 바쁘더라도 언젠가 자신(自身)만의 꿈을 펼칠 시기(時期)가 올 것이라 믿는다. 계속 그렇게 살다가 느린 시간(時間)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일은 없다.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깨닫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반환점(返還點)에서 되돌아올 힘을 아껴두면서 최선(最善)을 다해 달릴 수는 없다. 반환점(返還點)이 언제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사람들에게 민폐(民弊)를 끼치는 사례(事例)는 무조건(無條件) 잘못된 행동(行動)이 아니라 제 위치(位置)에 있지 않아서 적절(適切)하지 못한 행동(行動)인 경우가 많다. 그림은 목소리와 같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떤 소리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자신(自身)이 바라는 대로 사람이나 사물(事物)에 대한 평가(評價)를 할 수 있다. 모두 같은 생각을 낼 수는 없다. 언론(言論)의 자유(自由). 표현(表現)의 자유(自由). 사상(思想)의 자유(自由)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와 다른 의견(意見)을 내는 사람이라도 생각이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어떤 대상(對象)에 대한 내 생각도 시간(時間)의 흐름과 경험(經驗)의 축적(蓄積)에 따라 변한다. 내가 당시(當時)에 보고 느낀 것을 그리고 표현(表現)하면 그뿐 그것에 대한 평가(評價)는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當時)의 글과 그림은 최선(最善)이었기 때문이다. 좋다 나쁘다가 아닌 무엇인가를 시도(試圖)했다는 것이 중요(重要)하다. 내가 글을 쓴 이유는 감동(感動)해서 쓰고 싶어서 썼지 어떤 결과(結果)를 바라고 쓴 것이 아니었기에 순수(純粹)한 목적(目的)이었다. 그 순수한 의도(意圖)를 훼손(毁損)해서는 안 된다. 남은 물론이고 나 자신(自身)조차도 당시에 했던 행동(行動) 글 그림에 대해 왈가왈부(曰可曰否)해서는 안 된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기에 남의 평가(評價)에는 관심(關心)이 없다. 글을 읽고 그림을 보는 사람을 의식(意識)하고 행동(行動)한다면 불순(不純)한 의도(意圖)가 들어간 것이다. 내가 좋아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린 것이다. 항상(恒常) 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다른 사람도 감동(感動)을 받는다.

 

언어(言語) 너머에 있는 예술(藝術) 작품(作品)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다시 말로 설명(說明)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추상적(抽象的)인 듯하지만 구체적(具體的)이고, 뜬구름 잡는 듯하지만 땅 위에 굳건하게 발을 딛고 있다. 무엇인가를 언어(言語)로 표현(表現)해 버리면 아무래도 현실(現實)에 있는 진실(眞實)과는 어긋나 버린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言語)를 매개(媒介)로 진실(眞實)을 향해 돌진(突進)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음악(音樂)에 감동(感動)하고 그림에 감동(感動)한 사람들은 작가(作家)의 말을 듣고 싶어한다. 어떤 예술(藝術)을 추구(推究)하든 어떤 작업(作業)을 지속(持續)하든 인간(人間)의 모든 행동(行動)은 언어(言語)로 설명(說明)되어야 한다.

 

음악(音樂)과 그림을 감상(感想)하는 데는 언어(言語)가 필요(必要) 없다. 작가(作家)는 언어(言語)로 설명(說明)할 필요(必要)가 없다. 순수(純粹)한 열정(熱情)으로 했기 때문이다. 의도(意圖)가 없었기 때문에 설명(說明)할 것도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글이나 음악(音樂)이나 그림으로 얻은 감동(感動)을 언어(言語)로 나타내려고 한다. 언어(言語)가 인간적(人間的)이기 때문이고 언어(言語)로 표현(表現)된 것이 진실(眞實)은 아닐지라도 진실(眞實)을 향한 노력(努力)은 되기 때문이다. 언어(言語)는 불분명(分明)하고 불충분(不充分)하지만 그래서 추구(推究)할 여유(餘裕)나 공간(空間)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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