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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무엇이든 쓰게 된다. by 김중혁-20
등록일 2023.01.03 조회수 930

무엇인가를 사야 할 때 파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판매자(販賣者)들이 있다. 긴밀(緊密)하지 않는데 적당(適當)한 때에 와서 간결(簡潔)한 조언(助言)을 해주는 사람들이다. 인사(人事)는 정중(鄭重)하되 소란(騷亂)스럽지 않고 아주 가끔 구사(驅使)하는 유머의 성공률(成功律)도 무척 높다. 내가 필요(必要)로 하는 물건(物件)을 정확(正確)히 추천(推薦)하고 그 물건(物件)의 장점(長點)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整理)해 준다. 그런 사람에게서 물건(物件)을 사고 나면 종일(終日) 기분(氣分)이 좋다. 물건(物件)을 사고파는 일이 얼마나 중요(重要)한 대화(對話)의 일부(一部)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만약(萬若)) 1년 중 하루를 낭비(浪費)한다면 우리는 놓친 그 기회(機會)를 절대 회복(回復)할 수 없다. 그 이야기는 인생(人生)에 대한 은유(隱喩)이다. 비행기(飛行機)는 빈 좌석(座席)에서 생긴 매출(賣出) 손실(損失)을 결코 회복(回復)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간(時間)의 가치(價値)와 그것을 잘 활용(活用)해야 한다. 365개의 좌석(坐席) 중 비어있는 한 자리를 위해 예술(藝術)이 존재(存在)한다. 하루의 효율(效率)과 매출(賣出)의 손실(損失)을 따지기 전에 제 시간(時間)에 도착(到着)하지 못한 한 사람을 걱정하는 것이 예술(藝術)의 책무(責務).

 

자기(自己) 과장(誇張)은 어릴 적에 시작(始作)되며 여기에는 대가(代價)가 따른다. 아이들은 자신(自身)의 뛰어난 능력(能力))를 과대평가(過大評價)한다. 우리 딸 애너벨은 세 살 때 자기(自己)가 엄청 빠르다고 확신(確信)했다. 아빠나 언니보다 빠르다고 말했다. 아무리 많은 패배(敗北)를 겪고서도 자신(自身)의 눈부신 속도(速度)에 대한 확신(確信)을 잃지 않았다.

 

소설(小說)을 쓸 때 재미있으면서도 제일 힘든 일은 사람에 대한 묘사(描寫)이다. 사람에 대한 묘사(描寫)는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정답(正答)이 있는 것도 아니다. 늘 새로운 묘사(描寫)를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소설(小說)을 볼 때마다 , 이렇게 사람을 묘사(描寫)하는 방법(方法)도 있구나.’ 싶은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지만 그건 그 작가(作家)의 것일 뿐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힌트는 얻을 수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老人)을 묘사(描寫)하는 장면(場面)3D로 된 초상화(肖像畵)를 보여주는 것 같다. “노인(老人)은 수척(瘦瘠)했으며 목 뒷부분에는 깊은 주름살이 잡혀있었다. 양 뺨에는 열대(熱帶) 바다의 햇빛 반사광(反射光)에 노출(露出)되면 생기는 가벼운 피부암(皮膚癌) 종류(種類)의 갈색(褐色) 검버섯이 있었다. 검버섯은 얼굴 양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크고 무거운 고기를 잡으려고 낚싯줄을 오래 만진 탓에 그의 양손에는 깊은 흉터들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最近)에 생긴 상처(傷處)는 아니었다. 그것은 물고기 없는 사막(砂漠)의 침식(浸蝕) 구멍처럼 오래된 것이었다. 모든 게 늙어 보였으나 두 눈만은 그렇지 않았다. 두 눈은 바다와 똑같은 색깔이었고 쾌활(快活)한 불패(不敗)의 기색(氣色)이 감돌았다.”

 

눈앞에 노인(老人)의 모습이 생생(生生)하다. 게다가 불패(不敗)의 기색(氣色)이란 단어(單語)는 소설(小說)의 중요(重要)키워드이기도 해서 초반(初盤)의 묘사(描寫)로 소설(小說)의 주제(主題)까지 건드리고 있다. 이런 묘사(描寫)를 할 수 있다면 소설(小說)의 반()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추측(推測)일 뿐이지만 소설(小說)을 다 쓴 다음에 노인(老人)에 대한 묘사(描寫)를 덧붙였을 수도 있다. 소설(小說)의 시작(始作) 부분(部分)에 한 사람의 얼굴을 생생하게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小說)이 다 끝난 다음에야 주인공(主人公)의 모습이 선명(鮮明)해질 때가 많다.

 

묘사(描寫)는 객관적(客觀的)인 척하는 주관적(主觀的)인 영역(領域)이다. 아무리 상세(詳細)하게 묘사(描寫)한다 해도 우리는 그 사람을 도무지 알 수 없다. 소설가(小說家)가 묘사(描寫)한 표현(表現)으로 상상(想像)해야 한다. 또는 우리의 내면(內面)에 있는 그 사람을 상상(想像)해야 한다.

 

노인(老人)과 바다묘사(描寫)를 읽고 있으면 우리는 각자의 손바닥을 바라보게 된다. 낚싯줄을 오래 만진 탓에 생긴 깊은 흉터를 눈으로 그려보게 된다. 우리 손에는 없는 흉터지만 그 흉터를 우리 손바닥에서 본 것 같다. 묘사(描寫)란 독자(讀者)들의 깊은 곳에 있는 감각(感覺)을 일깨우는 것이다.

 

좋은 묘사(描寫)와 나쁜 묘사(描寫)를 구분(區分)하는 방법(方法)이 있다. 나쁜 묘사(描寫)는 예쁘기만 하고 정확(正確)하지 않고 좋은 묘사(描寫)는 선명(鮮明)하지 않지만 정확(正確)하다.

 

나쁜 묘사(描寫)는 최대한 포즈를 취한 뒤 어색(語塞)한 미소(微笑)로 찍은 셀카 사진(寫眞)이고 좋은 묘사(描寫)는 친한 친구와 놀다가 자연스럽게 찍히는 스냅샷이다. 우리는 평소(平素)에 그렇게 살 수 없지만 그게 진짜 나이기를 원한다. 평소(平素)에는 임시(臨時)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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