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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책 읽기) 회색사랑(저자 윤창식)-5
등록일 2022.12.16 조회수 701

", 고웅석 일병(一兵) 이리 와 봐라!"

"! 일병(一兵) 고웅석!"

너 말이다잉. 너가 좋아하는 하늘님한테 물어서 가라지와 쭉쟁이를 좀

알어묵게 설명(說明)해 줄래?"

"하나님은 그런 것까지는...."

"뭐라고? 너 임마, 맨날 시간(時間)만 나면 기도(祈禱)하면서 그런 것도 모른다고?”

 

사실(事實) 고웅석 일병(一兵)도 청룡부대(靑龍部隊)에 뽑히지 않았으니 이것 또한 하느님의 뜻 이런가. 모름지기 군대(軍隊)는 줄을 잘 서는 것이 장땡인지라 생명수당(生命手當)도 받고 잘만 하면 훈장(勳章)도 타는 전쟁(戰爭)터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창현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어디 군대(軍隊)뿐이겠는가. 아직은 스물한 살 풋내기 인생(人生)일망정 칼라하리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한 토막 인생(人生)의 고비를 넘어가는 갈피들이 창현의 가슴 속에서 서걱거린다.

 

정기휴가(定期休暇)를 마친 지 며칠 되지 않아 또 휴가(休暇)길에 나서는 창현은 혹 자기가 탈영(脫營)이라도 한게 아닌가 하고 놀라실 부모(父母)님 생각에 먼저 걱정부터 앞선다. 고향(故鄕)의 삼거리는 언제나 포근했으나 버스에서 막상 내려선 발길이 무거웠다. 잠시 눈을 들어 돌아보니 면사무소(面事務所) 건너 성진초등학교 운동장(運動場) 한편에서 아이들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자유(自由) 통일(統一) 위해서 조국(祖國)의 이름으로 임들은 뽑혔으니 가시는 길 월남(越南) 땅 하늘은 멀더라도 보내는 가슴에도 떠나는 가슴에도...”

 

창현은 눈물이 핑 돌았다.

 

정옥의 아버지 강진구는 목포(木浦)로 떠난 딸 생각에 또 회한(悔恨)에 젖는다. 물레방앗간 옆으로 달아낸 방에 홀로 누워 바닥 밑으로 꺼질 듯 한숨을 쉬었다. '대체 정옥이 년을 으째야쓰까?‘

 

강진구는 다섯 살 때 광주(光州) 대인시장(市場)에서 미아(迷兒)로 발견(發見)되어 남광파출소(派出所)에 인계(引繼)되었고 동명동(東明洞) 철길 옆 형제(兄弟) 고아원(孤兒院)에 들어온 것으로 기록(記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엄마를 따라 시장터에 나왔다가 순간(瞬間) 길을 잃은 게 분명(分明)했다. 강진구가 연포 방앗간에서 일꾼살이를 한 것은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고아원(孤兒院) 원생(院生)들은 열아홉 살이 되면 고아원(孤兒院)을 나와야 하는 규정(規定)에 따라 고아원(孤兒院) 동기(同期)들과 함께 한 많은 고아원(孤兒院) 생활(生活)을 끝내고 눈물로 작별(作別)의 인사(人事)를 나누며 뿔뿔이 흩어져 간다. 진구는 마지막 고아원(孤兒院) 문을 나서며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옅은 구름 한 조각이 한가로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참으로 막막(寞寞)했다. 그때 동기(同期) 철만이가 씨익 웃으며 진구에 게 그럴싸한 제안(提案)을 한다.

 

"진구야 너 갈 데 없지? 나랑 강진(康津)으로 내려가자."

"강진(康津)? 거기가 어딘디?"

"강진(康津)에 우리 고모(姑母)가 살잖냐. 고모(姑母)가 얼마 전 고아원(孤兒院)으로 마지막 면회(面會)를 왔을 때 고아원(孤兒院)에서 나오면 고모(姑母) 동네로 내려와 농사(農事)일도 도우며 살 궁리(窮理)를 해보라고 하더라. 너도 같이 가자."

"너만 오라고 했을 텐디 고모(姑母)가 좋아할까?"

"바쁜 일손 도와준다는디 너를 반대(反對)할 이유(理由)는 없을 거여.”

 

철만의 예측(豫測)은 빗나갔다. 너 혼자면 되는디 뭐하러 검은 머리를 하나 꿰차고 왔느냐는 고모(姑母)의 원망(怨望)에 진구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철만이 고모(姑母)는 그래도 친구(親舊)라는디 그냥 돌려보낼 수 있겠냐는 표정(表情)을 짓더니 지난 오일장(五日場)에서 우연(偶然)히 들려오는 말이 언뜻 떠오르는 모양(模樣)이었다. 그것은 건너마을 물리방앗간에서 일꾼을 구한다는 소식(消息)이었던 것이다.

 

곡식(穀食)을 찧으려 물방앗간에 들르는 아낙네들은 번듯하게 생긴 진구를 두고 한마디씩 거든다.

 

"아니, 워디서 이런 튼실하고 잘생긴 일꾼을 데려 왔당가?"

이런 데서 일하게는 안 생겠는디잉.”

"우리 사우 삼었으면 좋겠다야.

 

이러한 소문은 냇물을 따라 저 멀리 수암산 아래 마을까지 퍼진 모양이었다. 품삯도 다른 곳보다 싸게 받고 일도 깔끔하게 해준다는 소문(所聞)에 가을걷이가 끝난 후 곡식(穀食)을 찧으러 오는 아낙네들로 연포 물방앗간은 성시(成市)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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