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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책 읽기) 회색사랑(저자 윤창식)-9
등록일 2022.12.16 조회수 694

탐진강(耽津江) 끝자락에는 민물과 바닷물이 무시(無時)로 만나고 있었다. 무엇이 되는 길에는 또 다른 무언가를 스치다 스미는 지점(地點)이 있다던가. 숱한 스침과 스밈 그리고 만남과 별리(別離)는 피할 수 없는 모든 생명체(生命體)의 숙명(宿命)일 터. 어린 청춘기(靑春期)에 접어든 창현은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강진만(康津灣)의 갈대숲을 망연(茫然)히 바라본다. 흔들리는 모든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證據).

 

창현은 중학교(中學校) 졸업(卒業) () 한동안 집에서 빈둥대는 나날이 계속(繼續)되었었다. 집안의 농토(農土)라 해보아야 삼거리 전방(前方)의 빼빼마른 오징어 귀때기만도 못한 몰골이다 보니 부모(父母)를 돕고 자시고 할 일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 창현은 읍내(邑內) 술도가(都家)에서 막걸리통 배달꾼이 된 아랫마을 하대성이 처음으로 부러웠다.

 

"너 막걸리통 배달하는 폼이 제법이다야."

"창현아, 짱뚱어 잡을만 하냐? 정옥이도 못 만나고 겁나 외롭겁다?“

 

6개월 넘게 자전거(自轉車)에 막걸리통을 싣고 군내(郡內) 거의 모든 동네를 요리저리 싸돌아다니더니 대성이의 말하는 본새가 몰라보게 닳아진 느낌이 들었다.

 

짜식, 정옥이는 뭣할라고 물어보냐?”

"정옥이가 목포(木浦) 봉제공장(縫製工場)에 간다는 소문(所聞)이 있던디?”

 

창현이 읍내(邑內) 남포리 외갓집 사촌형(四寸兄)을 따라 탐진강(耽津江) 어귀 뻘밭에서 짱뚱어잡이로 나선 것은 늦더위가 아직 한창인 9월 초순(初旬)이었다.

 

창현아, 짱뚱어를 잡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짱뚱어와 친구가 되어야

쓴다잉.”

 

창현은 뻘밭에서 잔뼈가 굵어진 외사촌(外四寸) ()의 충고(忠告)에 꽤나 충격(衝擊)을 받았다. 짱뚱어를 잡지 말고 친구(親舊)가 되라고? 하지만 창현은 형()을 따라 뻘밭에서 발을 옮길 때마다 발목의 잔뼈가 도리 없이 뒤틀리는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잠시(暫時) 고개를 들어 뻘밭 너머 성요셉여고 국기(國旗) 게양대(揭揚臺)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망연(茫然)히 쳐다보곤 했다.

 

'혜경이는 지금쯤 무슨 공부(工夫)를 하고 있을까?“

 

창현은 혜경이를 맬젓장시 딸이라고 놀렸던 날들이 먼 옛일인 듯 가물거 린다. 갯벌에서 하루네 뒹굴다보니 검푸른 점액질의 짐승처럼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창현과 외사촌(外四寸) ()은 만덕산(萬德山) 쪽으로 해가 뉘엿거리면 귀갓길에 오른다. 그때쯤이면 성요셉학교도 파하는 얄궂은 시간은 어김없이 돌아오곤 했다.

 

"야 혜경아!"

"...?"

"나여 창현이.“

 

절지동물(節肢動物)의 검푸른 체액(體液)을 온몸에 뒤집어쓴 듯 엉거주춤한 창현의 모습은,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하교(下校) 길에 하얀 교복(校服)을 입은 혜경에게는 시궁창에 빠진 무슨 짐승처럼 비쳐졌을지도 모른다.

"나여 창현이."

"으응."

"나 요즘 요 앞 남포 뻘밭에서 짱뚱어 잡고 있어."

"어 그랬구나.“

 

어스름 속에서 두 남녀(男女)의 엉뚱한 만남이 마뜩찮은지 창현의 사촌형(四寸兄)은 먼저 간다며 휘파람을 날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매일 함께 잡은 짱뚱어는 사촌형(四寸兄)이 어판장(魚板場)에 넘긴다고 했다.

 

창현과 혜경의 집까지는 읍내(邑內)에서 20여리 넘는 거리였다. 그래서 혜경은 매일 금당 정류소(停留所)에 나와 버스를 타고 등교(登校)를 하고 창현은 털털한 짐바리 자전거(自轉車)를 타고 와서 남포 자전거포(自轉車鋪)에 자전거(自轉車)를 맡기고 바다로 나가곤 했던 것이다. 시커먼 뻘흙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에 웃음을 보이며 창현이 묻는다.

 

자전거(自轉車) 뒤에 탈래?”

“....”

"어째 무서워서 그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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