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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책 읽기) 회색사랑(저자 윤창식)-11
등록일 2022.12.16 조회수 714

"꽁까이 다이 라이 노 깨꼴라

 

순진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 어린 꽁까이들이야 부질없는 전쟁(戰爭)에서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들에게 해()를 가하는 일은 더욱 부질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송 상병(上兵)이 사랑해!라는 뜻으로 큰 소리로 주먹나팔을 분다.

 

"안유엠!"

"이엠 이유 아인!"

 

꽁까이들은 일제히 화답(和答)하며 창현과 덕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죽고 죽이는 전쟁(戰爭)터에서 과연 남녀(男女) 간에 사랑이 꽃필 수 있을까? 창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옥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창현은 월남(越南) 파병(派兵) 용사(勇士)로 뽑혀서 45일의 특별(特別)휴가(休暇)로 정옥을 만났던 날을 떠올리며 또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스무 살 두 청춘(靑春) 남녀(男女)는 목포(木浦) 대반동(大盤洞) 부둣가 간이(簡易) 주점(酒店)에 앉아 바다 밑으로 떨어지는 낙조(落照)를 바라보며 이별(離別)을 예비(豫備)하고 있었다. 창현은 월남(越南) 땅으로 정옥은 서울 신림동 1번지 스탠드바로 피할 수 없는 수순(手順)을 즈려밟아 갈 참이었다.

 

정옥은 야월 음악학원(音樂學院) 뿔테안경 원장(院長)으로부터 숙식(宿食) 제공(提供)에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는 일자리를 소개(紹介)받고 삼학 봉제공장(縫製工場)을 나오게 된다. 분홍 복사꽃 이파리 날리는 날 정옥은 봉제공장(縫製工場)을 떠나 서울행 열차(列車)에 몸을 실었다. 웬일인지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다. 기대(期待)와 불안(不安), 뒤에 남겨진 물레방앗간의 추억(追憶)들이 뒤얽혔던 것이다.

 

정옥은 1번지스탠드바에서는 강난초로 불리었다. 스탠드바 지배인(支配人)은 첫 대면(對面)에서 대뜸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 물었고 정옥은 물방앗간 뒤뜰에 5월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던 난초(蘭草) 꽃을 말했던 것이다. 난초꽃은 인기(人氣)가 좋았다. 노래 실력(實力)은 말할 것도 없고 늘씬한 키에 알맞게 살이 오른 정옥의 얼굴은 화장기(化粧氣) 없이도 춤꾼과 술꾼들의 시선(視線)을 붙잡았다.

 

반년(半年)만 그곳에서 고생(苦生)하면 정옥에게 꼭 맞는 가요(歌謠)를 작곡(作曲)하여 레코드판을 내주겠다던 야월 음악학원(音樂學院) 원장(院長)은 한 달이 지나자 전혀 연락(連絡)이 닿지 않았고 며칠 후 정옥은 스탠드바 웨이터에게 팁을 쥐어주며 몰래 짬을 내어 그 음악학원(音樂學院)을 찾아갔지만 음악학원(音樂學院)은 온데 간데 없었다.

 

송 상병(上兵)에게 뜸하게 배달(配達)되던 정옥의 위문편지(慰問便紙)가 한동안 뚝 끊긴 것은 창현이 월남(越南)에 파병(派兵)된 그해 5월 무렵이었다. 난초(蘭草)꽃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장식은 서울 한국대학교 국제관계학과(國際關係學科) 3학년(學年)을 마치고 고향(故鄕)으로 내려와 면사무소(面事務所) 병사(兵士) 업무(業務)를 보조(輔助)하는 방위병(防衛兵)이 된다. 시력(視力)이 약해 현역병(現役兵)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多幸)스럽게도 유장식은, 등치가 산처럼 크지만 마음은 솜털처럼 부드러운 병사계(兵事係) 차종우 계장(係長)'따까리' 노릇을 별 어려움 없이 해내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고향집에서 삼거리 면사무소(面事務所)까지 10여리 이어지는 들길과 신작로(新作路)를 자전거(自轉車) 페달을 밟으며 오가는 기분(氣分)이 제법 쏠쏠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매일은 아니지만 윤혜경을 꽤 자주 만나는 일은 늘 설레는 일이었다. 혜경은 읍내(邑內) 성요셉여고를 졸업(卒業)한 후 곧바로 고향(故鄕)의 성진 우체국(郵遞局) 직원(職員)이 되었다. 맬젓장시 어머니는 혜경이 우체국(郵遞局)에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딸이 너무 자랑스러워 멸치젓갈 냄새가 밴 손등으로 남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방위병(防衛兵)의 출근(出勤)이 한 시간 빠른 관계로 아침나절에는 장식과 혜경이 직접 만나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으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時間)은 얼추 맞아 스무 두 살 청춘(靑春)들은 삼거리에서 자주 마주치게 된 다.

 

"우체국(郵遞局) 업무(業務) 끝났냐? 버스 아직 안 오면 자전거(自轉車) 뒤에 탈래?" 장식이 자전거(自轉車)를 멈추고 한 발을 땅에 내려놓은 채 혜경에게 반갑게 손짓한다.

". 버스 곧 을 것인디..” 혜경은 그날따라 좀 언짢은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차()들이 다니는 신작로(新作路)는 그런대로 자전거(自轉車)가 다닐만 하지만 마을로 이어지는 좁디좁은 들길은 자전거(自轉車) 주행(舟行)이 용이(容易)하지 않을뿐더러 뒤에 누구라도 하나 태우면 균형(均衡) 잡기가 더욱 어려워 자칫 자전거(自轉車)가 물도랑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혜경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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