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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책 읽기) 회색사랑(저자 윤창식)-15
등록일 2022.12.16 조회수 699

그 시간 정옥은 서울 봉천동 시장(市場) 뒤 자취(自炊)방에서 혼자 진통(陣痛)을 하고 있었다. 스무 한 살 어린 나이에 아이를 어떻게 낳는단 말인가? 방안을 구르며 내지르는 정옥의 진통(陣痛) 소리를 들은 주인(主人)집 아주머니가 소스라치며 달려왔다.

 

"오메 뭔 일이까! 아이 아부지는 대체 누구길래 코빼기도 안 보이고. 불쌍해서 워쩐대." 주인(主人)아주머니는 아이 아빠부터 혼쭐을 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1967214일 저녁 짜빈동 꽝우와이산 중턱 위로 초승달이 막 떠오르고 있었다. 이를 신호(信號)로 하여 청룡부대(靑龍部隊) 5여단(旅團) 3대대(大隊) 11중대(中隊)를 중심(中心)으로한 짜빈동 전투(戰鬪)가 개시(開始)되었다. 중대장(中隊長) 정경진 대위(大尉), 화기(火器)소대장(小隊長) 박홍기 중위(中尉), 1소대장(小隊長) 정재학 소위(少尉), 2소대장 김정빈 소위(少尉), 3소대장 오현수 소위(少尉), 60mm 박격포(迫擊砲) 반장(班長) 오상열 중사(中士), 105mm 포병(抱病) 관측장교(觀測將校) 조창진 중위(中尉) 등으로 진용(陣容)을 갖춘 1차 공격조(攻擊組)의 전투(戰鬪)가 개시(開始)되었다.

 

3소대(小隊) 소속(所屬) 송창현 상병(上兵)은 공격(攻擊) 개시(開始)가 메아리치는 속에서도 고향(故鄕)의 한새봉에 떠오르던 초승달을 잠시 생각하며 가슴이 설레었다. 중학교(中學校) 졸업식(卒業式) 날 도림리 친구(親舊)들과 난생 처음 포도주(葡萄酒)를 한 모금씩 나눠 마신 기억과 연포 물레방앗간에서 정옥과 나누었던 어설프고 비릿한 입맞춤의 추억(追憶)은 수류탄(手榴彈)이 달린 가슴팍을 한바탕 훑고 지나간다.

 

전투(戰鬪)가 없는 날이면 짜빈동으로 물을 길으러 가서 남은 시간에 짜빈동 언덕배기에서 만나곤 하던, 나트랑항의 검푸른 바다물결을 닮은 응웬티린을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가슴팍에서 정옥의 입술을 막 떼어내는 찰나 잠복(潛伏)해 있던 베트콩의 일제사격(一齊射擊)이 시작(始作)되었던 것이다. 어느 새 초승달은 모습을 감추고 정글에는 짙은 안개와 가랑비가 내려 시야(視野) 확보(確保)가 어려워졌다.

 

그 시각(時刻) 정옥의 산통(産痛)은 절정(絶頂)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음씨 좋은 주인집 아주머니는 온몸으로 땀을 쏟으며 진통(陣痛)하는 정옥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허리가 아파 거의 누워만 있던 시할머니까지 지팡이를 짚으며 나와서 정옥의 난산(難産)을 거들고 있었다.

 

"원 시상에 이런 어린 시악씨가 혼자 애를 낳다니 애비는 대체 뉘기까잉?”

 

기실(其實) 애비는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머나먼 베트남에서 짜빈동 전투(戰鬪)를 벌이는 중이 아닌가. 11중대(中隊)는 시야(視野)를 확보(確保)하기 위해 즉각(卽刻) 81mm 조명탄(照明彈)을 뛰어 적정(敵情)을 확인(確認)하였으며 1소대(小隊) 규모의 적()들이 숲으로 도주(逃走)하는 것을 발견(發見), 집중(集中) 사격(射擊)을 가했다. 하지만 전쟁(戰爭)이 늘 그렇듯이 전사(戰史)에 남을만한 훌륭한 전투(戰鬪)라도 아군(我軍)의 희생(犧牲)은 피할 수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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