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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책 읽기) 회색사랑(저자 윤창식)-23
등록일 2022.12.16 조회수 637

"장식씨, 내일 본점(本店)에 출장(出張) 좀 다녀와야 되겠어.“

"무슨 출장(出張)을요?"

"을지로(乙支路) 본점(本店)에서 에어로빅 강습회(講習會)가 있는데 각 지점(支店)에서 남녀(男女) 1명씩 조()를 짜서 참석(參席)하라는 공문(公文)이 왔다네.”

"에어로빙이요?"

"아니, 에어로빅이라고 우리나라에 첨 들어온 레크레이션 종목(種目)인가 봐

"하필(何必)이면 제가 가야 하나요?"

"장식씨는 키도 크고 늘씬하잖아.”

 

이 소리가 대체 뭔 소리일까? 장식은 어이가 없었다. 장식에겐 거스를 수 없는 인생(人生)의 터미널을 또 한 번 건너가는 기분(氣分)이었다.

 

다음 날 오전(午前), 유장식은 총무과(總務課) 미스 정매숙과 환상(幻想)의 커플이 되어 본점(本店)으로 향했다. 정매숙은 상기(上氣)된 얼굴로 무척 들떠 있었다. 본사(本社) 강단(講壇)에 도착(到着)하자 상단(上段)에는 큼지막하게 '에어로빅 강습회(講習會)'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고 각 지점(支店)에서 파견(派遣)된 이른바 요원(要員)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짓고 있었다. 장식은 벌써부터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에어로빅이라? 저것이 대체 뭔 소리여? 애호박도 아니고? 도무지 그 말뜻을 알지 못했다. 처음 듣는 말이니 그럴 수밖에.

 

강습(講習)이 시작되었다. 무대(舞臺) 위에서 강사(講師)들은 옷을 요상하게 차려입고 이인(二人)일조(一組) 남녀(男女) 한 쌍씩 나와 연신 큰소리로 그놈의 애호박인지 뭣인가를 가르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렇게 재미없고 못할 일이 세상(世上)에 또 있을까.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빌고 또 빌었다. 예수님이 도왔나, 아니면 부처님이 도왔는지 생각키 보다는 '애호박 강습회(講習會)'는 일찍 끝났다. 장식은 사슬에서 벗어난 듯 마음이 홀가분해지기 무섭게 미스 정은 장식의 안일을 틈타는 듯 묘한 제의(提議)를 해왔다.

"나랑 같이 영화(映畫) 보러 가시죠. 요 앞 중앙극장(中央劇場)에서 재밌는 영화(映畫)하걸랑요. 호호호.”

 

장식은 좀 무서웠지만 이번에도 아무 대꾸도 못하고 마지못해 그녀 뒤꽁 무니를 따라 극장(劇場)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午後) 3시쯤 되는 시각(時刻)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두 남녀(男女)가 자리를 앉자마자 영화(映畫)가 시작되었다. 영화(映畫) 제목(題目)<정오(正午)에서 3시까지>였다. 장식은 그나마 좋아하는 서부영화(西部映畫)를 보게 되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기 시작했다. 찰스 브론슨이 주인공(主人公)이었다. 한낮에 은행(銀行)을 터는 강도(强盜)들의 행각(行脚)이 처음 화면(畫面)을 수놓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은행(銀行) 갱들을 제지(制止)하는 사람도 은행원(銀行員)도 없고 금고문(金庫門)도 열려 있어 갱들은 유유자적(悠悠自適) 뭉칫돈을 한 자루씩 메고 나온다. 그 장면(場面)은 은행(銀行) 강도(强盜)를 모의(模擬)하던 중 잠시 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을 자던 주인공(主人公)이 꿈을 꾸는 장면(場面)이었다. 장식은 영화(映畫)의 전개(展開)와 결말(結末)에 무척 흥분(興奮)이 되어 자세(姿勢)를 고쳐 앉으며 숨을 몰아쉬는 찰나, 미스 정은 또 전혀 예상(豫想)치 못한 말을 장식에게 날린다.

 

"우리 영화(映畫) 그만 보고 나가죠."

・・・・・・ ”(이런)

 

장식은 이번에도 아무 말도 못하고 그녀를 따라 나오고 말았고, 그녀는 안녕(安寧)이라는 말도 없이 휑하고 가버렸다. 뭐 저런 가시내가 있대? 장식은 어이가 없었다. 그 후 장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銀行)을 그만두게 되었고 부서(部署) 직원(職員)들이 섭섭하다며 추억(追憶)의 메모리도 써주고 송별회(送別會)도 열어주었으나, 매숙은 장식에게 무슨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아무런 반응(反應)이 없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가을비가 추적(追跡)이는 토요일(土曜日) 오후(午後) 광주(光州) 터미널다방(茶房)에서 강정옥과 윤혜경은 거의 5년 만에 얼굴을 맞대고 앉았다. 정옥의 품에는 7개월 째 접어드는 아기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혜경에게는 정옥의 모습이 무슨 멜로드라마의 처연(悽然)한 여주인공(女主人公)처럼 낯설기 짝이 없었다. 그토록 명랑(明朗)하기만 하던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정옥은 고개를 숙인 채 계속(繼續) 눈물만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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