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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책 읽기) 회색사랑(저자 윤창식)-25
등록일 2022.12.16 조회수 661

<5> 난초꽃 필 무렵

외팔이 송창현에게도 어김없이 봄날은 찾아왔다. 다도해(多島海) 슈퍼 건너편 단독주택(單獨住宅) 옥상(屋上) 화분(花盆)에 연분홍(軟粉紅) 앵두꽃이 제법 화사(華奢)한 어느 날 슈퍼 잔일을 마치고 골방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그 치열(熾烈)했던 월남전(越南戰) 짜빈동 전투(戰鬪) 수훈상(受勳賞)과 맞바꾼 한쪽 팔뚝의 혼령(魂靈)은 어디쯤 떠돌고 있을까.

 

그깟 수훈상(受勳賞)을 하나만 더 받았더라면 한쪽 팔마저 떨어져 나갈 뻔했군. 누워서 비스듬히 올려다 본 벽면(壁面)에는 중학생 교복(校服)을 입은 정옥의 어여쁘게 웃는 사진과 베트콩의 아내 응웬티린의 사진(寫眞)이 나란히 붙어 있다. 창현은 쓸쓸히 웃는다. 당시 응웬티린은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몇 마디 서툰 한국말로 따이한 군인(軍人)에게 남편(男便)이 죽었노라고 했다. 그때야 송창현 상병(上兵)은 응웬티린이 꽁까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송 상병(上兵)은 그녀를 마주칠 때마다 나트랑항의 검푸른 물결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입을 굳게 다문 사진(寫眞) 속 그녀의 얼굴빛은 잿빛이다. 진정한 사랑의 색깔은 무슨 색()일까?

 

창현은 장식과의 약속대로 자투리 시간(時間)을 이용(利用)하여 고등학교(高等學校) 검정고시(檢定考試) 공부(工夫)를 시작(始作)했다. 장식은 주말(週末)을 이용(利用)하여 다도해(多島海) 슈퍼에 들러 창현의 공부(工夫)를 도왔다. 중학교(中學校) 졸업(卒業)하고 담을 쌓았던 공부(工夫)가 창현에게는 생각키보다 훨씬 힘에 겨웠다.

 

"신학대학(神學大學)에 진학(進學)하려고 도전(挑戰)하는 공부(工夫)라서 하느님께서 단번에 붙여 주시겠지.“

 

장식은 때로는 농담(弄談)을 섞어가며 창현을 위로(慰勞)도 하며 공부(工夫)를 다그쳤으나 창현은 친구의 가르침 앞에서 졸기 일쑤였다. 창현은 월남전(越南戰)에서는 죽지 않으려고 베트콩들에게 전의(戰意)를 불태웠으나 이번엔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는 친구(親舊)의 모습에 장식은 가슴 한편쪽이 아려온다.

 

창현은 고교(高校) 졸업(卒業) 검정고시(檢定考試)에 세 번 연거푸 떨어진 후 마침내 합격(合格)하게 되었다. "장식아, 나 합격(合格)해 부렀다! 화랑무공훈장(花郞武功勳章)이 별거더냐 작껏!“

 

그해 첫 눈발이 휘날리던 날 창현의 전화(電話) 속 목소리는 늘 불화(不和)만 하던 세상(世上)을 새롭게 이긴 듯 들떠 있었다. 그 후 대학입시(大學入試)는 비교적(比較的) 순조(順調)로워 다음 해 창현이 입학(入學)하게 된 대학(大學)은 서울 왕십리(往十里) 외곽(外廓)에 자리한 국제(國際)신학대학(神學大學)이었고 그 대학(大學)에서 가수(歌手) 겸 작곡가(作曲家) 장조욱을 만난 것은 늪을 겨우 빠져 나와 또 한 차례 맞닥뜨린 숙명(宿命)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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