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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책 읽기) 회색사랑(저자 윤창식)-28
등록일 2022.12.16 조회수 628

신학대(神學大) 2학년이 되던 해, 창현은 벌써 불혹(不惑)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흔들리는 세월(歲月)의 편린(片鱗)들이 제대로 된 삶의 밧줄로 엮어질 날은 아득할망정 그해 늦봄에도 어김없이 진보라 난초(蘭草)꽃은 피어날 것이었다.

 

5월 중순(中旬)이 되어 송창현 작사(作詞), 장조욱 작곡(作曲)<난초꽃은 피는데>라는 디스코트롯풍의 대중가요(大衆歌謠)가 제법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송창현과 장조욱 그리고 강정옥은 봄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날, 장조욱의 집 지하(地下)에 마련된 음악실(音樂室)에서 만나게 되었다. 속세(俗世)와는 인연(因緣)을 끊었다면서 조욱의 음악실(音樂室)에는 한때 잘나가던 시절(時節)의 사진(寫眞)들이 벽면(壁面)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조욱은 피아노 앞에 앉아 직접(直接) 반주(伴奏)를 넣으며 정옥의 노래를 몇 곡 듣고 나더니 특유(特有)의 곱슬머리를 곧추세우고 놀라는 눈치였다. 정옥은 슈퍼스타급 작곡가(作曲家)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전율(戰慄)했다. 하지만 이내 조욱의 표정(表情)이 어두워진다.

 

"내가 몇 번 말했지만 노래 실력(實力)만으론 가수(歌手)가 되기 어려워."

"정옥은 유명가수(有名歌手)가 꿈이 아니라 자기 노래로 된 음반(音盤)을 갖는 것이 소원(所願)이라니께."

 

창현은 정옥의 마음을 어떻게라도 달래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창현과 정옥은 과천(果川)에 사는 장식과 혜경이 부부(夫婦)네를 찾아갔다. 혜경은 부러 포도주(葡萄酒)를 내오면서 얼굴이 붉어진다. 중학교(中學校) 졸업식(卒業式) 날 창현이가 삼거리 가게에서 몰래 사온 국산(國産) 포도주병(葡萄酒甁)에 아로새겨진 여배우(女俳優)의 붉은 입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부러 : 일삼아 굳이

 

벌써 20년도 훌쩍 지난 일인디....”

 

창현은 고해성사(告解聖事)하듯 목소리가 나긋해진다.

 

"그날 저녁 물레방앗간에 달만 뜨지 않았어도, 어쩌고저쩌고 또 말해보시지?" 장식이 창현을 놀린다.

 

신학대학교(神學大學校) 교양과목(敎養科目) 시간(時間)에 죄()와 벌() 개념(槪念)의 예()로 등장(登場)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異邦人)>의 남자주인공(男子主人公)이 햇빛이 너무 눈부셔 살인(殺人)을 했다지만, 나는 그런 부조리(不條理)한 상황(狀況)은 아니었고 그날 밤 정옥이가 겁나 이쁘더라야. 흐흐."

 

하지만 옛 추억(追憶)을 되새기던 두 쌍의 중년(中年)들은 정옥의 어두운 표정(表情)에 한동안 침묵(沈默)이 흘렀다.

 

가시내야 좀 웃어라. 창현이를 봐서도.”

 

혜경의 간절(懇切)한 타박(打撲)에 정옥은 또 눈물을 보인다. 물론 열아홉에 고아원(孤兒院)을 나온 아이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아이는 전남공고(全南工高)를 졸업(卒業)하고 고아(孤兒) 아닌 고아(孤兒) 신분(身分)으로 군대(軍隊) 면제(免除)를 받은 후 곧바로 광주(光州) 하남공단(河南工團)에 취업(就業) 중이라고 했다.

 

유장식은 한국대학(韓國大學) 대학원(大學院) 국제정치학(國際政治學) 박사과정(博士課程)을 마치고 몇몇 대학(大學)에 시간강사(時間講師)로 출강(出講)하게 된다. 장식과 혜경의 사이에 뒤늦게 태어난 아들이 군입대(軍入隊)를 앞둘 만큼 세월(歲月)이 흘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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