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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책 읽기) 회색사랑(저자 윤창식)-31
등록일 2022.12.16 조회수 701

연수생(硏修生)들은 한국(韓國)에 오기 전()에 기초적(基礎的)인 한국어(韓國語)를 익히고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문화적(文化的) 특성(特性)에 대해서도 나름 교육(敎育)을 받은 듯했다. 유장식은 한국(韓國)과 베트남은 모두 외세(外勢)의 지배(支配)를 받았고 남()과 북()으로 갈려 같은 민족(民族)끼리 전쟁(戰爭)을 겪은 아픔이 있다는 공통점(共通點)을 언급(言及)하며 강연(講演)을 시작(始作)했다.

 

프랑스의 가공(可恐)할 외세(外勢)에 맞서 분투(奮鬪)한 베트남의 민족적(民族的) 영웅(英雄) 호치민처럼 한국(韓國)에도 그에 버금가는 김구(金九, 1876~1949) 선생(先生)이 존재(存在)했다는 대목에서 연수생(硏修生)들은 전율(戰慄)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떤 형태(形態)의 전쟁(戰爭)이든 결국 비인간적(非人間的)인 전란(戰亂)의 피해(被害)는 고스란히 힘없는 백성(百姓)들의 몫이라는 설명(說明)을 듣고 연수생(硏修生)들의 표정(表情)이 어두워졌다. 또한 한국(韓國) 역사상(歷史上) 최초(最初)로 한국군(韓國軍)이 베트남 전쟁(戰爭)에 참여(參與)했으나 그것이 오롯이 베트남의 평화(平和)와 인민(人民)들의 자유(自由)를 지켜내기 위한 것만은 아니어서 한국인(韓國人)으로서 반성(反省)할 부분(部分)이 있다는 주장(主張)에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表情)을 짓기도 하였다. 특히 한국(韓國)의 따이한 병사(兵士)와 월남(越南) 처녀(處女) 꽁까이와의 사이에 태어나 고아(孤兒) 아닌 고아(孤兒)가 된 라이따이한의 수()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事實)에 유장식 교수(敎授)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과연(果然) 누구를 무엇을 위한 전쟁(戰爭)이었을까?라는 정치외교사적(政治外交史的) 의문(疑問)은 강연(講演) 내내 풀리지 않았다.

 

유장식교수는 강연(講演) 말미(末尾)에서 창현으로부터 전해들은 가슴 아픈 사연(事緣)을 하나 들려주었다. 장식은 베트남전에 참전(參戰)한 절친한 친구(親舊)가 한국군(韓國軍)의 총탄(銃彈)을 맞고 죽은 베트콩 병사(兵士)의 아내 응웬티린과 '회색(灰色) 사랑'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응웬티린은 당시(當時) 송창현 상병(上兵)'창엔 쑹'이라 불렀다고 한다. 과연(果然) 죽고 죽이는 전쟁(戰爭)터에서 적군(敵軍)의 아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이 뼈저릴 뿐이다.

 

유장식 교수(敎授)가 강연(講演)을 마치고 건물(建物) 복도(複道)로 나서려는데 베트남 연수생(硏修生) 중 하나가 황급(遑急)히 장식을 따라오는 것이었다. 뒤돌아보니 유독 검은 눈동자가 반짝이는 앳된 연수생(硏修生)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형언(形言)키 어려운 온갖 감정(感情)이 실려 있었고 영어(英語)와 서툰 한국어(韓國語)를 섞어가며 장식에게 애원(哀願)하듯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빛바랜 사진(寫眞) 한 장과 조개껍질로 만든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선생님! 창엔쑹 아즈씨 지금 어디 있어요?“

 

그 앳된 베트남 연수생(硏修生)은 응웬티린이 자기 엄마라고 했다. 엄마는 몇 해 전 숨을 거두며 창엔쑹과 함께 찍은 사진(寫眞) 한 장과 나트랑 항구(港口) 모래밭에서 쑹 아저씨가 조개껍질로 만들어준 목걸이를 자기 손에 꼭 쥐어주었다고 말하며 코를 훌쩍였다. 송창현 목사(牧師)는 유장식 교수(敎授)로부터 응웬티린의 딸이 아닌 자신(自身)의 딸이 산업(産業) 연수생(硏修生)으로 한국(韓國)에 와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만감(萬感)이 교차(交叉)하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난초꽃이 '보랗게' 피어나던 어느 봄날, 송창현은 남쪽 바다로 이어지는 탐진강(耽津江) 어귀에서 응웬쑹이라는 이름의 베트남 꽁까이와 마주 바라보고 섰다. 엄마와 이국(異國) 아빠의 성()을 하나씩 따서 이름 붙인 응웬쑹을 창현은 가슴에 꼭 안으며 그녀의 목에 하얀 조가비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그때 검은머리물떼새 한 마리, 물과 물의 경계(境界)를 딛고 회색(灰色) 구름이 점차 붉게 물들어가는 서녘 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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