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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1
등록일 2022.12.18 조회수 689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길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이 걸어서 생긴 이 길에 나도 발자국 하나 보태기 위해 둘레길 산책(散策)에 나선다. 산행(山行)을 격려(激勵)해 주고 삶을 동행(同行)하듯이 길벗이 되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길을 나설 때는 현실(現實)의 희비애락(喜悲哀樂)을 그대로 집 거실(居室)에 두고 나도 대자연(大自然) 속의 하나가 되고자 했으나, ()을 걸으면서도 세상(世上)(世上事) 일들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특히 탄핵(彈劾) 정국(政局)의 정치판의 사건들이 숲길의 고요를 깨뜨리곤 했다.

 

흐르고 소멸(消滅)하는 시간, 길에서 만난 풀 한 포기, 햇볕 한 줌, 나와 눈을 맞췄던 숨탄것들과 함께 숲길에서 그들과 하나가 되어 홀로 노래를 불렀다. 내가 홀로 불렀던 노래들이 이 글을 통해 독자(讀者)들과 함께 듀엣이 되기를 바란다.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숨탄것 : 생명을 가진 동물의 통칭.

 

생각 없이 의욕(意欲)만 가지고 둘레길 지도(地圖) 한 장을 구입(購入)하고 걸음을 시작하였다. 앞으로 닥칠 여러 어려움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숲길과 함께 하는 동안 가는 걸음은 행복(幸福)했다. 평일(平日) 눈을 뜨는 아침마다 토요일(土曜日)이 그리워졌다. 개울을 건너고 마을을 지나고 산을 넘으며 난생처음 본 듯 목이 아프도록 하늘을 쳐다보았고, 길을 잘못 든 날에는 두 발의 투덜거림에 어쩔 수 없이 감내(堪耐)해야 했다.

 

감내(堪耐) : 어려움을 참고 견딤

 

둘레길을 걷는 동안 지쳐서 마셨던 막걸리 한 사발의 청량(淸涼)함 그리고 어느 마을에서 보았던 쏟아질 것 같던 새벽 별은 여전히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설렘이다.

 

청량(淸涼) : 맑고 서늘하다

 

손자 손녀를 한숨으로 키우던 산골 허름한 상점(商店)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직도 점심 한 끼를 라면으로 때우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섬진강(蟾津江) 강변(江邊) 다슬기 요리(料理) 식당(食堂) 주인 할머니의 입담과 깔끔한 칼국수 맛은 잊지 못하고 그 후 먼 길을 몇 번이나 찾기도 했다.

 

입담 : 말하는 솜씨나 힘

 

흔들리고 터벅거리던 걸음으로 보냈던 그 시절 그 후 시간(時間)의 흐름과 함께 사람의 생김새가 달라지듯이 지리산(智異山) 둘레길도 지금은 그 결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숲에서는 발길이 닿는 곳이 곧 길이니 숲길의 결이 달라졌다고 한들 그게 무어 대수겠는가.

 

대수 : 중요한 일, 대단한 것, 최상의 일

 

늦가을의 둘레길은 풍성(豊盛)했다. 온갖 가을꽃이 둘레길을 수놓고 가는 길 내내 노랗게 익어가는 감과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산수유(山茱萸) 열매들이 함께 했다. 즈믄해가 걸린다고 해도 열매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느꼈던 감동을 모두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 즈믄해 : 천년

 

길섶 곳곳에 멧돼지 떼의 흔적(痕迹)을 보고 두려움이 앞서던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욕심(慾心)인지 미련(未練)인지 단 한 걸음도 빼먹지 않고 걸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답사(踏査)하듯이 걸었다.

 

길섶 : 길의 가장자리, 보통 풀이 나 있다.

 

산을 만나 고개를 넘을 때는 무슨 둘레길이 등산(燈山)길보다 더 험하냐 생각이 들었고, 그늘 한점 없는 제방(堤防) 둑길을 걸을 때는 숲으로 길을 낼 것이지 하며 투덜거리며 걸었다. 어떤 날은 시간(時間)을 제때 맞추지 못해 계곡(溪谷)물로 주린 배를 달래고, 또 어떤 날은 총총한 별빛 아래 컴컴한 산길을 더듬거리듯 하며 예약(豫約)한 민박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행복(幸福)했다. 더워도 행복했고 추워도 행복했다. 동행(同行)이 있어서 행복했고 홀로여서 행복했다.

 

우연히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에 원점회귀(原點回歸)했다. 완주(完走)했다는 뿌듯함보다는 이제 무슨 재미로 사냐 하는 허탈감(虛脫感)이 앞섰다. 엄지손가락부터 하나하나 구부리며 두매한짝도 남지 않은 은퇴(隱退)의 그 날을 기약(期約)했다. 지리산(智異山)이 안고 있는 슬픈 역사(歷史)마저 해원(解冤) 되는 듯했다.

 

허탈감(虛脫感) : 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

두매 : 젓가락처럼 쌍을 이루는 두 쌍. 낱개로는 넷이 된다.

두매한짝 : 다섯 손가락

회귀(回歸) :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가거나 옴

해원(解冤) : 원통한 마음을 품

 

지리산(智異山) 자락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첫 길을 나서는데 해돋이와 무지개가 나란히 펼쳐졌다. 시원한 바람 한 자락에 땀이 씻겨 나가고, 산봉우리가 안개 자락에 가렸다. 같은 방향(方向)에서 함께 연출(演出)하는 상서(祥瑞)로운 장관(壯觀)30여분 지속(持續)됐다. 올해 좋은 일이 있으려나 싶었다. 경사(慶事)가 찾아오는 데는 많은 시간(時間)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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