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약관 보기
개인정보 보기

책 읽기(독서)

글 정보
제  목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3
등록일 2022.12.18 조회수 672

봄날에 첫발을 뗀다. 봄옷으로 갈아입은 둘레길은 어떤 모습일까? 그 길에서 나는 무엇을 만나게 될 것인가? 분명(分明)한 것은 그 길에서 행복(幸福)을 확인(確因)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길을 걸으면 만나게 되고 보게 되는 삶과 목숨들, 여행(旅行)을 좋아하나 여행 전문가(專門家)는 아니고, 꽃과 풀을 좋아하나 식물(植物)학자(學者)도 아니다. 또 까만 밤하늘의 별바라기를 좋아하나 천문학자(天文學者)도 아니고, 시인(詩人)이나 철학자(哲學者)는 더더욱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목숨 : 살아가는 원동력, 숨을 쉬는 힘

목숨을 도모하다. : 죽을 지경에서 살길을 찾다.

 

도모(圖謀) : 어떤 일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을 꾀함

 

春種一粒粟(춘종일립속) 봄에 한 톨의 곡식을 심어

秋收萬顆子(추수만과자) 가을이면 많은 곡식을 거두네.

四海無閑田(사해무한전) 온 세상(世上)에 놀리는 밭은 없지만

農夫猶餓死(농부유아사) 농부들은 오히려 굶어 죽는다네.



鋤禾日當午(서화일당오) 호미 들면 어느덧 한낮이 되어

汗滴禾下土(한적화하토) 땀방울이 떨어져 벼 아래 땅을 적시네.

誰知盤中餐(수지반중찬) 그 누가 알리요 밥상 위의 이 음식이

粒粒皆辛苦(입립개신고) 한 톨, 한 톨이 모두 다 괴로움임을.


당나라 시인 이신 李紳

 

안감생심(安敢生心) = 언감생심(焉敢生心) : 감히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없음, 전혀 그런 마음이 없음

 

길을 걸으면 누구나 시인(詩人)이 되고 싶고 식물학자(植物學者) 천문학자(天文學者) 인문학자(人文學者)가 되고 싶다. 그렇다고 오리를 찍어놓고 백조(白鳥)라고 우기는 우()는 경계(警戒)해야 한다.

 

걷는 것이야말로 인간(人間)의 몸짓 중 가장 정직(正直)한 행위(行爲)이다. 길을 가면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언어(言語)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내리쬐는 햇살과 함께 걷다가 쉬고 쉬다가 걸으며 그들의 언어(言語)를 배울 것이다. 길을 만들고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 마을 어귀의 장승이나 당산나무의 전설(傳說)을 헤아리고, 젊은 시절 당산나무가 보았던 지리산(智異山)의 아픔도 느껴볼 것이다.

 

()은 강()으로 이어져서 바다가 되듯이, 길은 길로 이어져서 삶이 된다. 돌이켜보면 누구에게나 삶은 하루하루가 기적(奇蹟)이다. 그 기적(奇蹟) 같은 삶에 세월(歲月)가 쌓이면 전설(傳說)이 된다.

 

기적(奇蹟) : 상식(常識)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아주 기이(奇異)한 일

 

늦가을 햇살에 익어가는 홍시(紅柹)의 속살을 보라. 비바람과 한낮의 더위, 새벽녘의 추위가 어떻게 전설(傳說)이 되는지 볼 수 있다.

 

전설(傳說) :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길을 걷다 보면 내 삶의 비리고 떫은맛도 언젠가는 삭이고 삭여져서 홍시(紅柹)처럼 전설(傳說)로 익을 것이다. 내가 홍시로 익어서 배고픈 까치의 목구멍을 타고 흐를 수만 있다면 내 삶의 전설(傳說)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삭이다 : 먹은 음식물을 소화(消化)시키다. 긴장(緊張)이나 화()를 풀어 가라앉히다. 삭다. 기침이나 가래를 잠잠하게 하거나 가라앉히다.

 

삭다 : 물건이 오래되어 본바탕이 변하여 썩은 것처럼 되다. 걸쭉하고 빡빡하던 것들이 묽어지다. 김치나 젓갈이 발효(醱酵)되어 맛이 들다.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다.

 

4월 초순(初旬)의 아침 공기는 서늘했으나 따스한 햇살에 이내 녹아들었다. 커다란 안내판(案內板)이 반갑다. 등산화(登山靴) 끈을 조이며 수고할 두 발에게 부탁(付託)을 겸한 인사를 두 눈으로 건넸다.

 

외평(外坪)마을은 옛날 한양(漢陽)으로 가는 큰길에 터를 잡고 있다. 길은 개울과 그 개울보다 폭()이 조금 더 넓은 개천을 잇따라 건너면서 시작된다. 산길 들머리에서 뒤돌아본 풍경(風景)은 끝없이 펼쳐진 논밭으로 이어진다.

 

개천 : 시내보다는 크지만 강보다는 작은 물줄기

개골창 : 수채물이 흐르는 작은 도랑

수채 : 집안에서 버린 물이 집 밖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시설

잇따르다. : 계속 뒤를 이어서 따르다.

들머리 : 골목이나 마을 길에 들어가는 어귀

 

산길 들머리에서 뒤돌아본 풍경(風景)은 끝없이 펼쳐진 논밭으로 가득 차고 농부(農夫)의 부지런한 손길이 봄날의 검은 대지(大地)를 깨운다. 높게더기는 물론 돌비알을 깎아 만든 질땅은 절망(絶望)을 희망(希望)으로 일군 억척같은 삶의 징표(徵標). 입립신고(粒粒辛苦)의 그 고단함을 내 어찌 다 가늠할 수 있으랴 싶다.

 

입립신고(粒粒辛苦) :1. 낟알 하나하나가 모두 농부의 피땀이 어린 결정체라는 뜻으로, 곡식의 소중함을 이르는 말. 2.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고심하여 애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논틀길 : 논두렁 위로 꼬불꼬불하게 난 좁은 길

논틀 밭틀길 : 논두렁이나 밭두렁 사이로 난 좁은 길

 

높게더기 : 높은 고원지대에 있는 평평한 땅

돌비알 : 매우 가파른 돌의 언덕

 

질땅 : 질흙으로 된 땅

질흙 : 차지고 빛깔이 붉은 흙

차지다 : 퍽퍽하지 않고 끈기가 많다.=찰지다

 

들머리 : 골목이나 마을 길에 들어가는 어귀

어귀 : 드나드는 목의 첫머리

 

길목 : 길의 중요한 통로가 되는 어귀, 큰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가는 어귀, 어떤 시기에서 다른 시기로 넘어감


개미정지(쉼터)는 뿌리를 드러낸 채 서 있는 늙은 서어나무 몇 그루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목을 축이고 땀을 식히기 위해 옷가지 하나를 허물 벗듯이 벗겨냈다. 절대적(絶對的) 교통(交通)수단(手段)이 두 발이었던 시절 장 보러 가던 사람들이 지난(至難)한 삶을 잠시 내려놓고 가쁜 숨을 골랐던 쉼터다.

 

지난(至難) : 지극히 어렵다.

 

벼랑 : 깎아지른 듯 높이 서 있는 가파른 지형

 

길섶 : 길의 가장자리

가뿐하다. : 상쾌하고 가볍다.

 

글 정보
이전글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4
다음글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