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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8
등록일 2022.12.18 조회수 709

제방(堤防)길을 따라 오르는데 햇살이 화살되어 살갗에 꽂힌다. 5분쯤 금계 방향(方向)으로 걸으면 급하게 휘어 흐르는 엄천강(嚴川江) 너머로 비로소 등 굽은 새우섬의 모습이 드러난다. 새우섬은 이제 풀등이 되어 위리안치(圍籬安置)가 풀린지 오래다. 하지만 새우섬 앞을 지나는 엄천강(嚴川江)은 말없이 흐르다가도 비라도 내릴라치면 거칠게 소리 내어 울곤 한다. 비정(非情)한 권력(權力) 앞에 절망(絶望)해야 했던 젊은 왕자(王子)의 복받치는 설움이다.

 

풀등 : 모랫등, 하천의 한 가운데 상류에서 흘러온 모래가 쌓여 섬의 형태가 된다. 한강 여의도, 대동강 능라도가 대표적이다. 모랫등에 풀이 자라면서 작은 생태계가 형성되는데 이를 풀등이라고 한다. 을숙도가 풀등이다.

 

() : 편안(便安)할 정, 고요할 정

 

위리안치(圍籬安置) :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죄인(罪人)을 그 안에 가두는 일. () : 울타리 리

 

계유정란(癸酉靖難) : 1453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왕위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사건, 난리(亂離)를 안정(安定)시켰다는 뜻으로 정란(靖亂)으로 쓴다. 수양대군(首陽大君) 단종(端宗) 김종서(金宗瑞) 한명회(韓明澮) 사육신(死六臣) 생육신(生六臣) 신숙주(申叔舟) 등이 등장한다.

 

신숙주(申叔舟)는 후대(後代)에 상하기 쉬운 나물인 숙주나물이 되었다.

 

 

바래봉에서 발원(發源)한 물줄기는 굽이굽이 흐름 속에 이름을 바꿔가며 섬진강(蟾津江)과 낙동강(洛東江)으로 흘러 이 땅의 젖줄이 된다. 지리산(智異山) 둘레길은 전설(傳說)과 전설(傳說)보다 더한 역사(歷史)의 생채기를 밟고 지나가는 길이다.

 

생채기 : 손톱 따위로 할퀴거나 긁혀서 생긴 작은 상처

 

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歷史), 눈물을 닦으면서도 그래도 또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써 놓고 나면 찢어버리고 싶은 이 역사, 찢었다가도 그래도 또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이것이 네 나라며 내 나라요, 네 역사며 내 역사다. - 함석헌(咸錫憲, 1901~1989)

 

때 이른 더위다. 유월 초순(初旬)인데도 기온(氣溫)은 섭씨(攝氏) 30도를 오르내린다.

 

모내기를 마친 논은 푸르름을 더해가고 마을로 내려온 지리산(智異山) 자락에는 밤꽃이 한창이다. 능선(稜線)이 끝나는 곳에서 파란 하늘이 시작되고 흰 구름은 한가(閑暇)롭다.

 

길은 엄천강(嚴川江)과 헤어져 자혜교 앞에서 오른쪽으로 급하게 꺾인다. 위패(位牌)가 모셔진 곳까지의 추모공원(追慕公園) 계단(階段)은 아득하다. 분노(憤怒)와 위로(慰勞)가 뒤범벅이 된 마음으로 계단(階段) 하나하나 헤아리며 114개의 계단을 114개의 의미(意味)로 올랐다. 민간인(民間人) 학살(虐殺) 주범(主犯)들의 부조상(浮彫像) 설명서(說明書)의 의미(意味)가 서럽고 간절(懇切)하다. 치유(治癒)되지 않는 역사(歷史)가 전설(傳說)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나거들랑 전시관(展示館)에 들러 분노(忿怒)하길 바란다. 때로는 분노(忿怒)가 힘이 되고 사랑이 되기도 한다.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작은 몸짓 하나 보태는 일이다.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 패()

부조(浮彫) : 조각(彫刻)에서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이 도드라지게 새김

위패봉안(位牌奉安) : 유골(遺骨)이나 시신(屍身)이 없어서 이름 등을 석판(石板)에 적어 보존(保存)하는

 

사람들이 끌려가고 스러져간 길가 묵은 논밭 땅에 개망초가 피어 한세상(世上)을 이루고 있다. 계란후라이를 닮아 계란꽃이라고도 부른다. 계란꽃은 나라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强占期)에 유난히 많이 피었다고 하여 망국초(亡國草) 또는 개망초라 불렸다. 누명(陋名) 쓴 꽃이 질긴 생명력(生命力)으로 누명(陋名) 쓴 목숨을 위로(慰勞)하듯이 들판을 하얗게 채우고 있다. 개망초의 꽃말은 화해(和解). 개망초 꽃에서 속절없이 사라져간 민초(民草)들의 얼굴을 본다.

 

목숨 : 살아가는 원동력, 숨을 쉬는 힘

목숨을 도모하다. : 죽을 지경에서 살 길을 찾다.

 

도모(圖謀) : 어떤 일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을 꾀함

 

길은 이내 산으로 이어져 숲길로 들어서고 숲길은 계곡(溪谷)과 어깨동무하며 손잡고 오른다. 초여름의 풍부한 수량(水量)으로 크고 작은 폭포(瀑布)와 소()를 이루고 흐르는 물은 너럭바위의 얼굴을 씻어낸다.

 

() : , 땅이 우묵하여 물이 괴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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