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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9
등록일 2022.12.18 조회수 770

개수를 세다가 잊을 만큼 폭포(瀑布)가 계곡(溪谷)이고 계곡이 폭포다. 산뽕 익어 그늘은 짙어가고 산새 울어 길은 노래로 채워진다. 계곡물 소리로 숲은 더 깊어지는데 길섶의 하얀 찔레꽃이 이울고 있다.

 

목이 메고 왈칵 눈물이 솟았다. 보는 이도 없어 볼 타고 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그대로 둔 체 한동안 걸었다. 속절없는 눈물은 아들을 위해 흘렸을 부모님 눈물이 이제 그 아들의 흉곡(胸曲)에 닿아 너울지고 있다.

 

길섶 : 길의 가장자리, 보통 풀이 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초피(제피)와 산초(山椒)를 구분하지 못하니 그게 어쩌면 산초였는지도 모르겠다. 마을로 가는 길에는 온갖 과수(果樹)들이 다가올 날들을 위한 채비로 분주(奔走)하다. 똘기들이 가을의 벅찬 꿈에 부풀어 있다. 보리수와 앵두는 한낮의 햇발에 취해 빠알갛게 농익고 진동(振動)하던 밤꽃도 향기(香氣)를 덜어낸다. 길가 뽕나무 오디는 여름날을 이기지 못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봄날의 꽃들이 피고 진 자리에 수많은 알갱이가 자기 빛깔로 익어가고 있다.

 

똘기 : 채 익지 않는 과일

분주(奔走) : 몹시 바쁘게 뛰어 다님

농익다 : 과실 따위가 흐무러지도록 푹 익다. 분위기가 성숙하다

농염(濃艶)하다 : 한껏 무르익어 아름답다

 

 

흉곡(胸曲) :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 = 흉중(胸中)

 

너울지다 : 거칠게 넘실거리다, 표정 등이 강하게 나타나다.

넘실거리다. : 부드럽게 굽이치다, 부드럽고 가볍게 움직이다, 넘칠 듯 말 듯 하다.

 

하지만 아직도 초피(제피)와 산초(山椒)를 구분하지 못하니 그게 어쩌면 산초였는지도 모르겠다. 마을로 가는 길에는 온갖 과수(果樹)들이 다가올 날들을 위한 채비로 분주(奔走)하다. 똘기들이 가을의 벅찬 꿈에 부풀어 있다. 보리수와 앵두는 한낮의 햇발에 취해 빠알갛게 농익고 진동(振動)하던 밤꽃도 향기(香氣)를 덜어낸다. 길가 뽕나무 오디는 여름날을 이기지 못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봄날의 꽃들이 피고 진 자리에 수많은 알갱이가 자기 빛깔로 익어가고 있다.

 

똘기 : 채 익지 않는 과일

분주(奔走) : 몹시 바쁘게 뛰어 다님

농익다 : 과실 따위가 흐무러지도록 푹 익다. 분위기가 성숙하다

농염(濃艶)하다 : 한껏 무르익어 아름답다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다. 산을 안고 흐르는 강물과 그 산 위에 얹히는 흰 구름의 무심(無心)을 헤아리는 여유(餘裕)로움도 거울처럼 맑은 경호강이 주는 기쁨이다. 서덜 하나 골라 씻은 발 올려놓고 구겨지고 눅눅해진 마음을 강바람에 말려볼 일이다. 어느새 물기 말라 고들고들해지는 것이 어찌 젖었던 맨발뿐이겠는가?

 

길에서는 잃어버린 나를 찾기도 하지만 두 손에 움켜쥔 나를 버리기도 한다. 강변길보다 두어 시간 이상 소요(所要)되지만, 계곡(溪谷)의 풍치(風致)와 시원한 숲길이 늘어난 시간을 보상(補償)한다.

 

서덜 : 냇가나 강가의 돌이 많은 곳, 생선의 살을 발라내고 남은 부분들(매운탕 재료)

 

풍치(風致) : 시원스럽게 격에 맞는 멋

비보림(裨補林) : 부족한 것을 도와주기 위해 심은 숲

 

여름날 걷기에는 만만찮다. 숲과 그늘은 내리 저수지(貯水池)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저수지(貯水池) 둑길은 왼편의 에움길로 이어져 저수지(貯水池)를 반 바퀴 돈 다음 개어귀에 이른다. 자귀나무꽃은 피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 위에 내려앉는다. 내려앉은 분홍(粉紅) 꽃들이 하늘거리는 나비 떼를 닮았다.

 

궤지기 : 찌꺼기, 남아서 쓸데없는 물건, 찌기, 찌거리

에움길 : 굽은 길, 에워서 돌아가는 길

에우다 : 사방을 빙 둘러싸다, 다른 길로 돌리다.

개어귀 : 강물이나 냇물이 바다나 호수로 들어가는 어귀

 

선녀탕(仙女蕩)은 웅석봉(熊石峰)의 절경(絶景) 가운에 하나다. 선녀가 몸을 씻고 산의 숨탄것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탕()은 숲에 가려 은밀(隱密)하다. 웅석봉(熊石峰) 임도(林道)는 햇발을 받으며 걸었던 지난 발걸음을 보상(補償)하듯이 숲 그늘 속 평지(平地)로 이어져 2km 가량 계속(繼續)된다.

 

은밀(隱密)하다 : 숨어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탄것 : 생명을 가진 동물의 통칭.

절경(絶景) :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경치

 

숲길이 끝나는 곳에 헤어졌던 경호강 물길이 다시 눈에 들어오고 강 건너편에는 철쭉으로 유명(有名)한 황매산이 그윽하다. 산줄기는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마을로 내려오고 한낮의 햇살을 품은 빨간 보리수 열매는 더 없이 매혹적(魅惑的)이다. 피운 꽃 떨구어내고 푸르게 익어가는 유월의 산하(山河)에서는 성숙(成熟)한 여인(女人)의 체취(體臭)가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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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智異山) 고리봉에서 발원(發源)한 물줄기는 굽이굽이 흐름 속에 이름을 달리하면서 섬진강(蟾津江)과 낙동강으로 흐른다. 고리봉에 떨어진 빗방을 하나가 쪼개져 람천 만수천 임천 엄천 경호강 진양호 낙동강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동북쪽으로 튀면 영남(嶺南)의 젖줄이 되고 남서쪽으로 튀면 호남(湖南)의 젖줄이 된다.

 

난이도(難易度)가 가장 높은 구간(區間)으로 5~6시간 걸린다. 하지(夏至)를 사나흘 앞둔 시기(時期)니 일몰(日沒) 시간이 늦지만 서둘러야 한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긴 발덧으로 더 걸을 수 없었다. 고장난 발은 시외터미널로 돌아가고, 성한 발은 목적지(目的地)까지 간 다음 합류(合流)하기로 하였다.

 

발덧 : 길을 많이 걸어서 생기는 발에 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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