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약관 보기
개인정보 보기

책 읽기(독서)

글 정보
제  목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12
등록일 2022.12.18 조회수 765

백운 계곡을 끼고 길 왼편으로 꺾어져 내려가면 켜켜이 쌓인 남명(南冥)의 흔적(痕迹)들을 만나게 된다.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던 야은 길재(吉再)의 회한(悔恨)이 새삼스럽다.

 

인걸(人傑) : 특히 뛰어난 인재

회한(悔恨) : 뉘우치고 한탄함

 

오백 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손은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이정표(里程標)를 놓치고 말았다. 굳이 핑계를 달자면 둘레길이 그만큼 길손을 방심(放心)케 한 탓이지 길손이 주의(注意)를 게을리한 탓만은 아니다. 둘레길은 마근담까지 이정표(里程標)를 따라가는 길이다. 마근담까지 가는 길도 백운 계곡 참나무 군락지(群落地) 못지않게 아늑하다. 소나무와 참나무 숲이 잇따르고 휘어지는 길섶 따라 산비탈은 벼랑처럼 아스라하다. 기분 좋으면 활개치고 걸어도 좋고, 생각이 깊어지면 뒷짐 지고 걸어도 좋다. 시오리(十五里) 길이 시작된다.

 

길손 : 먼 길을 가는 나그네

벼랑 : 낭떠러지의 험하고 가파른 언덕

길섶 : 길의 가장자리, 보통 풀이 나 있다.

활개치다. 의기양양한 태도로 팔다리를 세차게 흔들며 걷다.

시오리(十五里) : 십리에 오리를 더한 거리

 

무슨 전설(傳說)이 어려있을 것 같은 이름의 마근담은 막힌 담에서 유래(由來)했다. 마을 앞 골짜기의 끝자락에 있는 감투봉이 마을을 담처럼 막고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름이 된장찌개 못지않게 토속적(土俗的)이다. 임도는 요리조리 꺾이고 휘어지며 구불구불 돌아간다. 마근담 계곡과 흐름을 함께 한 탓이다.

 

하늘에 수평선(水平線)을 그은 능선과 능선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을 자연스레 조망(眺望)할 수 있어 걷기에 나름 편하다. 길을 걷는 내내 과수원(果樹園)의 감나무가 길손을 향해 손을 내민다. 감 열매는 진초록 잎사귀 뒤로 숨으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몸은 어찌할 수 없다. 숨을 수 없는 열매가 아이의 젖니처럼 귀엽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계곡(溪谷) 물소리에 새소리와 매미 울음소리가 섞인다. 급할 이유가 없으니 듣보기가 더 즐겁다.

 

길손 : 먼 길을 가는 나그네

젖니 : 젖먹이 때 나서 갈지 않는 이

듣보기 :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여 알아보고 살피다.

 

욕천(浴川) - 남명

사십 년 동안 온몸에 찌든 때, 全身四十年前累
천 섬 맑은 물로 깨끗이 씻는다. 千斛淸淵洗盡休
만약 오장 안에 티끌이 생기면, 塵土倘能生五內
지금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흘러 보내리. 直今刳腹付歸流

 

 

 

길은 사리마을에서 몸을 푼다. 덕산(德山)은 조선(朝鮮) 선비의 기개(氣槪)와 절조(節操)의 최고봉(最高峰)이라고 일컫는 남명(南冥)이 만년(晩年)에 제자(弟子)들을 가르치며 살던 곳이다. 남명(南冥) 기념관(記念館) 앞의 회화나무에는 연노랑 꽃이 싸라기눈처럼 나뭇잎에 얹히거나 땅으로 내려오고 은은한 향()은 바람결에 날린다. 산천재(山天齋)에 들어서면 천왕봉(天王峯)이 손에 잡힐 듯하고 뜰에는 홍매(紅梅)가 반 천년(千年)의 세월(歲月)을 힘겹게 이겨내고 있다. 천왕봉이 잘 보이는 곳에 터를 잡고 매화(梅花)를 심은 남명(南冥)의 뜻은 천왕봉의 높은 기상(氣像)과 매화(梅花)의 고결(高潔)함을 잊지 말라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남명매(南冥梅)는 지금도 이른 봄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해마다 연분홍(軟粉紅) 겹꽃을 틔운다. 우리에게도 이런 선비가 있었다는 자긍심(自矜心)의 표출(表出)이다. 만부방의 거덜들이 벼슬아치가 되어 공직(公職)을 농단(隴斷)하는 시대(時代)이기에 더욱 그렇다.

 

만부방 : 염치없이 막된 사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아무렇게나 생긴 사람

거덜 : 조선시대 말을 돌보고 관리하던 종

농단(隴斷) : 이익을 독차지 함

 

글 정보
이전글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13
다음글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