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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18
등록일 2022.12.18 조회수 754

산에 안겨 산의 위로(慰勞)를 받으며 해찰 부리지 않고 걸으면 해껏에는 대축마을에 닿을 것이다. 먹점재를 넘어 30분쯤 가면 발아래에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風景) 하나가 느닷없이 눈에 들어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섬진강(蟾津江)이다. 모래가 많아 다사강(多沙江) 또는 사강(沙江)이라고 불렸던 섬진강(蟾津江)의 모래톱이 하얀 살을 드러낸 채 잔비에 젖고 있다. 이 모래톱은 평사리 공원(公園)이다.

 

해찰 :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쓸데없는 다른 짓을 함, 마음이 내키지 않아 부질없이 집적거려 해침

 

잔비 : 가랑비

() : 가랑비, 빗소리

는개 : 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비 보다는 가늘다.

이슬비 : 는개보다는 굵고 가랑비 보다는 가늘다.

가랑비 : 이슬비 보다는 굵게 내리는 비

 

해껏 : 해가 질 때까지. 그는 날마다 해껏 일한다.

 

길은 섬진강(蟾津江) 풍경(風景)을 뒤로 하고 가던 길에서 벗어나 오른쪽 비탈길로 가파르게 오른다. 주목(注目)받지 못한 삶의 회한(悔恨)일까? 오르는 길에 주은 똘배는 입안에서 오랫동안 서걱대며 쉽게 몸을 풀지 않았다. 오늘 밤 민박(民泊)집에서 막걸리 안주가 되어 전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에게도 지난 여름의 햇발은 힘들었을 테다. 비에 젖은 가을 산은 5시가 넘자 사위(四圍)에 해거름의 어둑발이 깔린다.

 

서걱이다 : 무엇이 스치거나 밟히는 소리가 잇따라 나다.

서걱서걱 : 눈이 내리거나 눈을 밟을 때 나는 소리, 연한 과자 배 사과를 씹을 때 나는 소리

 

사위(四圍) : 사방의 둘레

해거름 : 하루 해가 지나감, 해가 서쪽으로 넘어감, 넘어가는 시간

어둑발 : 땅거미. 사물을 잘 구별(區別)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빛살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했던가? 해는 지고 갈 길은 멀다. 포장(鋪裝) 임도(林道)를 타고 서둘러 오르는데 그만 길이 끝나고 말았다. 길을 잘못 든 것이다. 임도(林道)를 따라 관성(慣性)으로 걷다가 숲길로 접어드는 표시(標示)를 미처 보지 못했다. 그래도 길을 잃은 덕에 똘배를 만났으니 탓할 일만은 아니다. 가던 길을 되돌아 와 들어선 숲길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열병(閱兵)하듯 늘어서고 솔가리 수북이 깔린 길은 발의 피로(疲勞)마저 잊게 한다.

 

아름드리 : 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큰 나무 등(아름드리 나무)

 

홀로 걷는 숲길에서 아람 벌어진 밤나무가 헛기침하듯 가끔씩 열매를 떨궈 적막(寂寞)을 깨뜨린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地點)에서 또 한 번의 풍경(風景)이 눈길을 붙잡는다. 토지(土地)의 무대(舞臺)가 되었던 평사리 황금(黃金) 들녘과 들녘 너머로 운무(雲霧)에 쌓인 지리산 능선(稜線)이 한눈에 들어온다. 펼쳐진 능선(稜線)의 운무(雲霧) 속으로 들어서면 금방(今方)이라도 신선(神仙)이 될 것만 같다.

 

아람 : 밤이나 상수리 등이 충분히 익어 저절로 떨어진 것이나 그 상태

 


노랗게 물든 평사리 들녘이 비이슬을 머금은 채 기지개를 켜고, 마을로 내려왔던 산안개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고 있다. 비는 유리창을 두드려 일잠에 든 길손을 깨우고 산안개는 마을 앞 개울에서 뒤척였다. 샛강으로 흐르는 물은 섬진강(蟾津江)에 닿기 직전 긴 호흡(呼吸)을 고른다.

 

일잠 : 저녁에 일찍 잠

샛강 : 큰강의 본류(本流)에서 물줄기가 갈라져 나가서 가운데에 섬을 이루고 하류(下流)에서 다시 본류(本流)에 합쳐지는 지류(支流)

비이슬 : 비와 이슬, 비가 내린 뒤 맺힌 이슬

길손 : 먼 길을 가는 나그네

 

길은 다시는 만나지 않을 듯 앵돌아서 제 갈 길로 간다. 가는 길에 소설(小說) 속 최치수를 만나거들랑 그토록 외롭고 깐깐하게 지키고자 했던 가치(價値)는 무엇이었더냐고 물어볼 터다. 최 참판(參判)의 허망(虛妄)한 가치와는 달리 평사리 들녘은 변함없는 생명(生命)의 가치(價値)로 가득하다.

 

앵돌다 : 홱 토라지다.

참판(參判) : 조선시대(朝鮮時代), 육조(六曹)의 종이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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