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약관 보기
개인정보 보기

책 읽기(독서)

글 정보
제  목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22
등록일 2022.12.22 조회수 763

지리산(智異山) 기슭의 산골 마을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것은 집과 집, 논과 밭의 허름한 경계(境界)를 이루는 돌담 울타리다. 무너지거나 넝쿨이진 돌담은 소담스럽고 마을 어귀의 늙은 적송(赤松) 몇 그루는 적당히 구부러져 사람의 나이 듦을 위로(慰勞)한다. 난동 갈림길에서 숲으로 들어서면 지초봉(芝草峰)으로 들어서는 초입(初入)이다.

 

길손 : 먼 길을 가는 나그네

소담스럽다 : 모자라지도 넘치지도않다. 생김새가 탐스러운 데가 있다. 음식이 풍족하여 먹음직하다.

초입(初入) :골목 등으로 들어가는 어귀, 어떤 일의 시초

 

계절(季節)은 더디 오거나 또는 겨울을 건너뛰어 가버린 듯했다. 소한(小寒)을 지나 대한(大寒)으로 가는 절기(節氣)의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포근했다. 숲길의 오리나무는 묵은 열매를 매단 채 새싹이 돋고 진달래도 좁쌀만한 꽃망울을 틔우고 있다. 숲은 겨울의 한복판에서 봄날의 꿈으로 은밀(隱密)하다.

 

은밀(隱密)하다 : 숨어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초봉(芝草峰)은 진도 홍주(紅酒)를 빚는 원료(原料)로 잘 알려진 지초(芝草)가 많아서 얻은 이름이다. 하지만 마른 숲에 지초(芝草)는 보이지 않고 야생(野生) 춘란(春蘭)만 시퍼렇게 살았다.

난동마을의 난()은 난초(蘭草)의 난()에서 유래(由來)한다는 이야기를 겨울 숲이 증명해 보이는 셈이다.

 

뒷짐 진 채 걸어도 돌부리에 채이지 않을 만큼 임도는 넓고, 넓은 산길은 무심(無心)하다. 마음을 짓누르는 버력더미를 하나씩 내려놓고 걷기에 제격이다. 구리재를 오를 때는 햇볕을 가릴 모자와 무심(無心)을 채울 화두(話頭) 하나쯤은 챙겨야 할 성싶다. 구리재는 구렁이를 뜻하는 구리(구렁이)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재에 오르는 길의 생김새가 구렁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구불구불하다 해서 붙여졌다. 길은 열두세 번 이상 휘어지고 꺾어진 뒤에야 비로소 재빼기에 닿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산동(山東)까지의 10리 남짓 내리막길 역시 구렁이 지나듯 구불구불 굽돌이길이다. 휘몰아가는 물살 같은 굽도는 길을 따라 굴참나무 아래에 이르면 작은 돌무덤 두 개가 바람에 젖고 있다. 피다 만 꽃처럼 떨어진 어린 새끼 몸 위에 돌덩이 몇 개 포개 놓고 허적허적 비탈길을 내려갔을 에미 에비의 발길이 아렸다. 못잊어 다시 돌아온 어미의 꼬까삐처럼 바람은 그렇게 돌무덤 위를 맴돌았다.

 

아리다. : 마음이 고통스럽다./ 상처등이 아프다

꼬까삐 : 꽃을 엮어 연고없는 혼령의 해코지를 막는다.

 

낙엽 쌓인 숲길은 바스락거리고 길 따라 흐르는 계곡물은 수정처럼 맑고 모래알은 선명(鮮明)하다. 넓은 임도를 걸을 때는 무료(無聊)해서 끄집어내었던 화두(話頭) 따위는 다시 집어넣어도 좋을 만큼 숲길은 상큼하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구례(求禮) 수목원(樹木園)은 야생화(野生花) 생태공원(生態公園)을 겸하고 있으나 계절(季節)은 꽃이 지고 잎도 지는 시간 어느 봄날을 기약(期約)할 수밖에 도리 없다. 대신 탑동마을로 가는 길에 수확(收穫)의 손길을 비껴간 산수유(山茱萸) 열매가 보석(寶石)처럼 매달렸다. 장석주(張錫柱, 1849~1921) 시인의 대추 한 알은 루비가 된 산수유(山茱萸) 열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료(無聊) : 흥미있는 일이 없어서 심심하고 지루함

등굽잇길 : 등처럼 굽은 길

굽돌이길 : 급히 돌아가는 커브길

등구잇길 : 등처럼 굽은 길, 완만하게 활처럼 휘어진 길

굽돌다 : 한쪽으로 휘어 돌다.

버력 : 광산 등에서 광물 성분이 섞이지 않는 잡돌

구리 : 구렁이

재빼기 : 재의 맨 꼭대기=영마루 잿마루 영두(嶺頭)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颱風)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世上)과 통하였구나

 

산동(山東)의 온천수(溫泉水)로 앙당그렸던 몸을 풀고 흙돼지 요리에 산수유 막걸리 한 사발이면 까짓것 세상(世上)살이 별거냐 싶다.

 

앙당하다 : 크기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작다.

앙당그리다 : 춥거나 겁이나서 조금 움츠리다.

 


산동마을의 열아홉 살 처녀 백부전이 불렀다는 산동애가(山東哀歌). 세월이 지난 뒤 사람들이 노랫말을 다듬고 곡()을 붙여 음반(音盤)을 냈으나 한동안 금지곡(禁止曲)으로 묶여 세상(世上)에 나오지 못했다. 산골마을에 해원화(解冤花)로 피어 봄을 여는 산수유는 울타리도 되고 가로수(街路樹)도 되고 정원수(庭園樹)도 된다. 산동(山東) 면사무소(面事務所)에 주차(駐車)하고 나서는 길을 백발(白髮)이 성성한 노고단 능선(稜線)이 지켜보고 있다.

 

해원(解冤) : 원통한 마음을 품

 

설을 하루 앞둔 섣달그믐날 겨울바람은 벼린 칼처럼 날이 서고 눈 쌓인 빈 논에서는 배고픈 겨울새가 인기척에 놀라 하늘로 올랐다. 산동면 일대는 어느 쪽이었고 어느 쪽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목숨줄을 놓지 않으려 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야 했던 비극(悲劇)의 현장(現場)이다. 산동의 상흔(傷痕)은 생일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날의 제사로 환치(換置)되는 슬픈 역사(歷史)이다. 원촌마을은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전체 가옥(家屋)70%가 전소(全燒)됐다. 그 시절에도 겨울바람은 세상(世上)의 끝에서 얼어붙은 가슴들을 파고들고 놀란 겨울새는 하늘로 올랐을 것이다. 현천마을은 견두산(犬頭山)에서 뻗어 내려온 지맥(支脈)이 현()자를 닮은 데다 마을 앞으로 흘러 이름 지어졌다. 맞은바라기 노고단과 시각적(視覺的) 눈높이를 마주한다.

 

목숨 : 살아가는 원동력, 숨을 쉬는 힘

목숨을 도모하다. : 죽을 지경에서 살 길을 찾다.

 

도모(圖謀) : 어떤 일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을 꾀함

 

환치(換置) : 바꿔 놓음

맞은바라기 : 앞으로 바로 보이는 곳 = 맞바라기

능선마루 : 능선의 마루

능선 : 산등성이를 따라 죽 이어진 선

글 정보
이전글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23
다음글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21